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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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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영화

片/眩 / 2014. 5. 7. 23:30

흑백 영화는 저음의 구술처럼 빈약한 시각 요소로 영상을 서술한다. 고전 영화에 내가 감탄하는 것은 특별한 연출, 배우의 연기, 줄거리 때문이 아니다. 나는 저低시각성, 흑백의 대조가 유일한 기표가 되는 그 극소박성에 감탄한다. 가령 빛과 어둠이라는 그 주요 차이성에 초점을 맞추어 가시적 요소를 포착하는 것이다. 성의 차이도 이런 식으로 파생한다. 이런 차이는 음영 없는 색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미세한 특질을 포착하는 정신분석, 고음 처리, 노래의 맛깔, 춤의 기교, 색조의 농담濃淡.

작가들은 흑과 백으로 글을 쓴다. 


파스칼 키냐르 <심연들> p109


오늘의 밑줄.


가끔 나는 내 방이 무덤같다는 생각을 한다. 책들로 삼면이 둘러쌓인 내 방문을 꼭 닫으면 사위가 고요하다. 티브이도, 흔한 라디오나 스테레오 장치 없는 이 단순한 방은, 대부분은 죽은 사람들의 말과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머리위에서는 형광등의 시신경이 얇게 타들어가는 소리만 들린다. 오늘은 어떤 책의 어떤 페이지를 기웃거릴지 결정하기 위해 책장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이 하루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마치 무덤가를 산책하는 것같다. 이 공간 만큼은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공간 역시 버려야만 한다.


나는 언젠가 이 방을 완전히 떠날 것이다.



Posted by 느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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