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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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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23

片/眩 / 2014. 8. 24. 00:01

술자리 인연을 핑계삼아 어떻게든 북경대학에 연을 대보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박교수(백현진)는 최현(박해일)에게 '작금의 동북아 정세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너무 솔직히 속내를 드러냈다 거절 당하자, 난처함을 무마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최현은 박교수의 기대를 처절하게 뭉개버린다. '전 잘 모르겠어요' 또다시 박교수는 질문한다.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교수님의 고견을 어쭙는겁니다' 최현은 대답한다. '솔직히, 저는 제가하는 학문이 똥같아요' 


일면식도 없는 최현에게 품고있던 자신의 기대감이 무너지자, 박교수는 서슴없이 최현을 공격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이해한 타인이 자신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자,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지 않고, 대뜸 상대방이 잘못되었다고 탓을 하는것이다. 


오늘 아트시네마에서 장률 감독의 <경주> 상영이 끝나고 GV 시간에 재미난 광경이 벌어졌다. 관객 질문 시간에 어느분이 '디아스포라'니, '네이쳐'니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용어를 섞어 가면서 장률 감독의 '정체'를 폭로(?)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장률 감독은 그저 느끼는대로, 직관적으로 영화를 찍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덧붙여서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라고 사려깊은 인사까지 잊지 않으셨다. 


그 관객은 자신이 얼마나 높고 깊은 층위에서 장률의 영화를, 장률이라는 감독을 파악하고 있는지를 다른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확인받기 원했지만, 이 처절한 인정욕구는 결실을 보지 못했다. 정리되지 않은 개념들을 늘어놓은 그 일련의 '질문' 어디에도 <경주>라는 영화는 없었으며, 그가 파악했다고 착각한 장률이라는 사람의 자리 역시도 없었다. 그는 그 순간 책 꽤나 들여다본 사람이 저지르기 딱 좋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모습이 영화 속 박교수와 똑같은 모습이었다는 점이다. 감히 예상하건데, 그는 영화속 박교수의 실수를 보면서 꽤나 크게 웃었을 것이다. 자신이 조금 있다가 그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것이라고는 까마득히 모른채 말이다. 


Posted by 느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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