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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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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맥퀸은 <Shame 셰임>의 모든 대화 장면을 촬영하면서 인물들을 한 화면에 담아낸다. 샷 - 리버스 샷은 영화에서 단 두 번 사용된다. 바로, 지하철에서 브랜든이 어떤 여자와 은밀한 눈빛을 교환할 때이다. 브랜든에게 있어 관계는 직접적 대상이 아니라 상상적 대상과 이루어질 때, 또는 그러한 상황을 망상할 때 더 수월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 시작과 끝의 두 시퀀스를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서 시선의 교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쌍방향 교신을 가장하는 화상 채팅이나 타인의 섹스를 관음하는 포르노에 탐닉하는 브랜든의 시선은 통상적인 '현대사회에서 관계의 소멸'의 징후가 아니다. 개인의 감각을 넘어서는 과포화된 관계망들, 스마트폰, 네트워크 속의 'anonymous'로 수렴되는 과잉된 익명성 속에 브랜든의 시선은 위치한다. 자아는 익명성 안에 숨으려 하지만 오히려 잘게 복제되어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상태. 브랜든이 두 명의 여인과 벌이는 섹스는 쾌락보다는 고통에 가까워 보인다. 사정이 가까울수록 브랜든의 표정은 처연해진다. 한순간 그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데, 이 시선은 섬뜩하고 아름답다. 그는 마치 거울 너머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브랜든 자신이면서 또 그 누구도 아니며, 어쩌면 들켜버린 바로 나 자신, 또는 당신이다. 그는 마치 자신에게 남은 자아의 한 조각까지 모두 방출해 버리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면서 더는 자신이 아닌 상태.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을 놓아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섹스 장면은 역설적이다. 사정하는 순간의 짧은 죽음은 생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삶은 제어 할 수 없는 우연성의 칼날 끝에 맺히는 물방울과도 같다. 브랜든은 마치 자신과 모든 것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섹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마치 그의 여동생이 팔에 무수한 자살시도의 흔적들을 남기는 것처럼, 모든 절멸의 방식은 말하기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느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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