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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06 육체: 망각과 기억의 장소



전직 야구선수인 호창(임창정)은 대학 야구부의 말단 직원이다. 어느 날 그에게 중요한 임무가 맡겨진다. 전라남도 광주에 있다는 초 고교급 투수를 비밀리에 스카웃 해오는 것이다. 이 임무에는 야구부의 사활이 걸려있다. 라이벌 대학교와의 자존심 싸움에서 3 년 째 밀리고 있는 야구부 최후의 카드. 그가 바로 고등학생 선동렬이다. 억지로 떠밀려 내려간 광주에서 호창은 세영(엄지원)과 우연히 재회한다.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호창과 세영은 이소룡이 죽던 날 헤어진다. 호창은 세영의 일방적인 결별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스카우트>는 공적 기억으로서의 역사란 결국 무수히 많은 개인의 사적기억들이 오랜 시간 쌓여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때의 기억은 명백한 물질성과 육체성을 지닌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에서 '천불이 난다'고 한다. 이때의 기억은 분명한 육체적 현상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호창의 잃어버린 기억은 뒤늦게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소환된다. 대학시절 호창과 야구부원이 부당해임 교수의 복직 농성 현장에 투입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유니폼에 붙어있는 등번호와 자신의 이름을 떼어낸 이들은 잔뜩 눌러쓴 모자의 익명성 뒤에 숨어 농성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어쩌면 이들의 '우발적이었던' 폭력은 1980년 광주의 시위 진압 현장에서 전경들을 통해 재현된다. 호창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행위를 망각 속에 묻었다.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행위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호창의 망각은 1980 년 광주를 통해서 비로소 기억의 형태로 명확하게 재구축된다. 몸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기억할 것이지만, 정신은 기억하기를 거부한다. 가해자였던 호창은 자신의 행위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기억에 의도적인 망각을 일으킨다. 물론 이것은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다. 망각은 일종의 방어기제로서 작동한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실체를 직시하지 않기 위해 저도 모르게 눈을 가리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해자가 된 인물들이 과거를 어떤 형태로든 기억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들에게 기억한다는 행위는 과거를 망각 속에 묻어두기 위한 중요한 기제로 작용된다. 지방대 교수 조은숙(문소리), 만화가 박 필/박석규(지진희), 불량배 박석호(조성하),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이 세 사람은 하나의 비밀을 공유한다. 그것은 바로 동급생의 죽음이다. 장난처럼 시작된 수영장에서의 추격전은 갑작스러운 추락사로 중단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는, 누구도 제어가 불가능한 현상이다. 갑자기 비집고 들어오는 죽음의 순간은 보는 이들에게 죽음이라는 실체적 사건을 환기시킨다. 부조리극 같은 이 영화가 정색하고 진담을 건네는 기묘한 순간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절대로 기억한다고 드러내서도 안되고, 발설해서도 안 되는 사건이다. 세 명 모두 가해자이면서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모두 살아가지만 더러는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견뎌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마치 과거의 희미한 그림자 같다. '결혼은 하고 사냐?'라는 박석호(조성하)에게서 멀어져가는 조은숙의 절룩거리는 왼쪽 다리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맘대로 이탈하려드는 제어 불가능한 삶의 기관器官처럼 보인다.


운동선수들은 같은 동작을 익숙해 질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한다. 이것은 전경들도 마찬가지이다. <스카우트>의 후반부, 경찰서 진압장면에서 볼 수 있는 약속된 구령에 맞추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전경들의 움직임은 반복된 훈련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복 훈련의 목적은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신체를 교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반사신경 체계를 프로그래밍 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이성적 판단에서 기인하는 기억이라는 행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렇다면 기억하는 것은 피해자만의 몫인가? 적어도 <스카우트>에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한 때는 형이 되게 원망스러웠었는데, 다시 보니까, 그럭저럭 봐줄만 하네?'라는 세영의 말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오롯이 품어낼 수 있었던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존엄을 보여준다. 이는 같은 해에 개봉되었던 <화려한 휴가>가 동일한 주제인 광주민주화항쟁을 대중영화의 화법 속에서 비교적 안전한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던 것과는 여러모로 비교점을 가진다. 그러나 <스카우트>는 단순한 후일담, 또는 비극의 스펙터클에서 멈추지 않고 기억한다는 행위를 통해 보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과거를 껴안을 것을 주문한다.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괴물투수 선동렬의 스카우트를 둘러싼 이전투구라는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광주라는 역사적 사실이 가지는 질감의 결은 더욱 풍부해진다. 이러한 <스카우트>의 전략은 기억이라는 행위가 지니는 가치를 1980년 광주라는 특수성을 넘어서 현재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대중적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기여한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이러한 기억이라는 보편적인 기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학창시절의 조은숙과 염색과 교수 조은숙과의 연결고리는 희박하다. 조은숙의 절룩거리는 왼쪽 다리는 그녀를 기억해 내려는 인물들에게 '장애'로 작용된다. 박석규는 조은숙에게 '(절룩이는) 다리 때문에 못 알아 봤다'라고 말한다. 화장실 앞에서 박 필/박석규와 조은숙이 벌이는 탐색전은 마치 구애의 춤처럼 동물적이고 에로틱하다. 두 남녀의 몸짓은 암컷과 수컷으로서의 호기심과 의구심 사이를 비틀대며 넘나든다.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에서 불연속적 존재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연속성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했다. 존재의 연속성은 생식의 순간 획득 될 수 있는데, 이 때 필연적으로 생식은 '작은 죽음'을 초래한다. 바로 그 순간, 정자와 난자는 소멸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섹스와 죽음은 밀접하게 닿아있다. 중학교 시절의 사고는 은숙을 가운데에 둔 쟁탈전의 와중에 벌어진 것이다. 질투심에 못이긴 유선생은 음주 운전을 강행하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제어할 수 없는 수컷으로서의 욕망은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만큼이나 불가해한 것처럼 보인다. 은숙은 석호에게 '우리가 몇 명을 죽였는지 아느냐'며 힐난한다. 조은숙의 절룩이는 왼쪽 다리, 변형된 육체는 그녀를 알았던 다른 이들이 기억을 환기하는 것을 교란한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게 만드는 매개체로서 기능할 것이다. 물론 영화는 그녀가 왜 다리를 절룩이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이상한 결락이 발생된다. 아무리 꼼꼼히 기억한다고 해도 메꿀 수 없는 무언가가 남는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김 PD(박원상)는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그녀를 보면서 '죽이지 않느냐'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연을) 알 수 없는 대상에의 매혹에서 결국에는 죽음을 초래하는 에로스로의 연결. 그 중심에 기억과 망각의 장소로서의 육체가 놓여진다. 하지만 육체는 어떤것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를 말할 뿐이다. 이렇게 현재는 기억이 중첩된 장소,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며 흔들리는 시간의 육체가 된다. 
 

2013. 6. 6. 최종 퇴고. 


Posted by 느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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