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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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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8.15 <그랑블루>, 거대한 어둠 2




간혹 야간 산행을 하면서 어느정도 산길에 익숙해지면 손전등을 끈다. 때로는 순간적으로 온몸의 감각이 차단된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기도 한다. 온통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으면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시야가 제한되는 그만큼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진다. 발걸음과 호흡이 조용히 가라 앉는다. 산속이 고요한 바닷속처럼 달빛 속에서 일렁인다. 바로 앞 어둠 속에서 무언가 숨쉬고 있는것 같은데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무섭고 매혹적이다. 온통 푸르고 투명한 그림자들만 가득하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불빛이 마치 별같다. 하늘과 땅이 뒤섞인채로 천지사방이 별뿐인것 같다. 


뤽 베송의 <그랑블루> 리마스터링 버전을 다시 봤다. 영화 속 바다는 기억처럼 푸르고 눈부시지 않았다. 차라리 청회색의 모노톤에 더 가깝다. 이 영화는 거대한 어둠에 관한 이야기다. 엔조는 죽어가면서 자크에게 '네 말이 맞았어. 저 아래가 이 위보다 더 좋더라'고 말한다. 자크는 조안나에게 '다이빙을 하다보면 저 아래에서 다시 이 위로 올라와야 할 이유를 찾는것이 제일 어려워'라고 말한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때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다시 보게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크는 결국 자신이 택한 어둠속으로 침참하는것을 택한다. 사람이 어둠을 이겨낼 수 있을까. 밤이면 환하게 주위를 밝혀도 어둠은 사라진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주위에서 끈질기고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다. 어둠은 이겨내거나 쫒아낼 수 없다. 이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자크가 더 깊은 심해로 내려갈 수록, 겹겹이 쌓인 푸른 바다가 결국 완벽하게 칠흙같은 어둠으로 변하는 것처럼, 어둠과 빛은 양립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한몸처럼 거기에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가치판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크는 사랑하는 연인마저도 버리고 바다밑 깊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극단적인 선택, 극단적인 단절, 그는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선택함으로서 모든 세계를 파괴한다. 

 

우리는 완벽하게 혼자이면서 동시에 함께 살아간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둠과 빛 모두를 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불완전한 채로 삶이라는 완벽한 모순을 끌어안을 것을 요구 받는다. 그러나 자끄는 끊임없이 순수한 세계를 동경한다. 계속 물을 끼얹어 줘야 뭍위에서 살 수 있었던 돌고래처럼, 자끄는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더 깊은 어둠속으로 돌아간다. 그가 결국 바닷속 어둠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공감되지도 않고, 매혹되지도 않는다. <그랑블루>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움직였던 장면은 숨을 거둔 엔조가 푸른 어둠속으로 말없이 가라앉는 순간이다. 말없이, 눈물도 없이 죽음과 단절을 받아들이는 순간. 


어두운 산길이 익숙해질 때쯤 되면 하나둘 산아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 빛, 이른 새벽 불켜진 창문들 밑을 지나다 보면 일찍 일어난 누군가의 밭은 기침소리, 아침 상의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죽은 듯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난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다. 또다른 밤을 맞이하기 위해 하루를 다시 준비한다. 


Posted by 느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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